August 25

광해군이 아무렇게나 관직을 제수하다

광해군은 하루는 궁궐에서 재추가 모두 참석한 큰 잔치를 베풀었다.   재추는 의정부와 중추부의 재상을 이르는 말이다.

 

광해군이 둘러보니 자기가 싫어해서 승진을 시켜주지 않았던 벼슬아치 하나가 금대를 두르고 잔치상에 앉아 있었다.   놀랍고 의아한 마음이 들어서 잔치가 파하자 마자 이조에 명을 내려서 그 벼슬아치에 대해서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이조에서는 그 벼슬아치는 이미 청반에 제수되었다고 보고했다.   청반은 홍문관처럼 당장 지위가 높지는 않으나 명예가 있고 나중에 높은 벼슬을 할 수 있는 벼슬자리다.

 

광해군은 보고를 받고 이리 말하였다.   “사람이 귀히 되는 일은 운명이라, 임금이라도 능히 어쩔 수 없구나.”

 

이런 일이 생기게 된 이유는 광해군이 장난삼아 관직을 제수했기 때문이었다.   관직이 비면 이조에서  후보자 세 사람을 추천해 올렸다.   그러면 임금이 그 중 하나에 낙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광해군은 붓에 먹물을 찍어 세 사람 이름 위에 흩뿌려서 먹물이 떨어지는 이름을 선택하거나, 글을 모르는 궁인에게 명하여 아무 이름이나 점을 찍게 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것도 운명이다.”

August 1

7년 전쟁의 숨은 주인공, 고니시 유키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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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작가의 ’7년 전쟁’을 읽었다.   임진왜란을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하기 위해서 7년 전쟁이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다. 방대하고 정확한 자료수집, 간결하고 힘있는 문체, 전체와 부분을 함께 보는 균형잡힌 시각…   나도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중국에 삼국지가 있고 일본에 대망이 있다면, 한국에는 7년 전쟁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일본군 선봉에 서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장수이다.   하지만 ’7년 전쟁’에서 그는 결코 악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고뇌하고 전쟁이 일어난 후에는 다시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고니시 유키나가를 이 정도로 호의적으로 평가한 한국책은 없었다고 생각된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의 사위이자, 쓰시마 섬의 도주인 소 요시토시를 앞세워 끊임없이 조선과 화친을 도모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조선 조정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두 속여가면서 전쟁을 막아보려고 애쓴다.   조선조정에는 왜구를 잡아다 바치면서 일본이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간청한다고 말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는 조선 통신사가 항복사절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는 선봉장이 되어 조선을 침략하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든 빨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조선과 평화교섭을 시도하고 명나라 심유경과도 화친을 도모한다.   물론 이번에도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명나라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또 속인다.     막판에는 속임수가 들통나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심지어 진주성을 공격할 때는 명나라 사신 심유경을 통하여 미리 피하라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책에서는 아주 긴 지면을 할애하여 그의 화친 시도를 그려내고 있다.   책 전체를 보아도 그보다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조선 인물은 없다.

 

김성한 작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이런 노력을 그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는 듯 하다.   전쟁은 천주님 뜻에 반하는 것.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막아야 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한다.   전쟁은 결국 발발했고, 그는 선봉장이 되어서 조선군과 싸우고 양민을 학살한다.   김성한 작가의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도 그의 고뇌는 무겁게 와닿는다.

 

’7년 전쟁’은 간단한 서평 하나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운 책이다.   수 많은 조선, 명나라, 일본의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벌이는 사건들을 엄밀한 고증 하에서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다양한 서평이 나올 수 있다.   나는 그 많은 인물 중에서 이상하게도 고니시 유키나가가 기억에 남고 이 것이 김성한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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